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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士멘토의 열공특강] 김수행 교수 "공부 잘하기 위해선 체력 길러야 합니다"

하루 4~5시간 자며 공부… 전과목 교과서 찢어 먹으며 독하게 암기
김태완 맛있는공부 기자 kimchi@chosun.com


김수행(66) 교수는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의 대부로 꼽힌다. 자본주의 주류 경제학이 아니라 이념면에서 '불온사상'에 가까웠던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에 평생을 천착한 것이다. 국내 처음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완역했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는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올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직에서 퇴임한 뒤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부임했다.

김 교수는 "제가 '불온사상'인 마르크스 경제학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창시절 겪은 가난과 영국 유학시절에 겪었던 영국사회의 진보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지난 10월 8일 성공회대 교수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공부와 삶의 이야기를 3시간 가까이 들었다.

"왜 우리는 계속 가난할까"

1942년생인 김 교수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해방직후 귀국선을 탔다. 원적은 경북 김천시 황금동. 유년시절은 경주와 경산, 대구 등지에서 보냈다. 육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인 그는 "집안형편 탓에 늘 가난과 맞서야 했고 장남으로서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구중앙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으로 치른 시험에서 12등을 했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5등 안에 들 정도로 우수했다. "당시 세대가 그랬겠지만 촛불과 호롱불 아래에서 공부했다. 추운 겨울엔 장갑에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공부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무던히 공부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머리는 그렇게 명석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일종의 성실파였지요. 아이큐는 120정도로 기억해요. 선생님께서 기발한 질문을 자주하는 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실 정도였습니다. 공부를 하다 생기는 의문은 반드시 풀려고 애썼지요. 경북중에 합격하고서 등록금을 마련할 요량으로 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큰 누나가 대구사범학교(현 경북대 사범대)를 나왔는데, 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우리집을 많이 도왔지요."

장남인 김 교수가 경북중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기위해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에 진학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와 1,2등을 다투던 친구들이 가난 탓에 진학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학교문집에 '달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내 땅을 갖고 내 집을 짓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글을 실었다고 한다.

"몇 가지 의문을 품게 됐어요. 왜 공부 잘하는 학생이 계속해서 공부할 수 없을까? 왜 사회와 정부는 가난한 사람에게 무관심할까? 왜 우리는 계속 가난할까? 머리도 좋고 똑똑하던 친구들이 잘려나간 모습을 보면서 이 불만투성이의 의문은 더욱 커졌지요."

그는 대구상고 시절, 연식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전국대회에서 우승, 대구역에서 학교까지 시가행진을 할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당시엔 운동선수랍시고 수업에 빠져선 안됐기 때문에 공부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경북중 시절, 기초를 다져놓은 덕에 고교수업은 중학교 과정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운동으로 체력을 기른 탓에 밤늦게까지 공부해도 버틸 수 있었다.


서울대 상대 수석합격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에는 빚쟁이가 끊이질 않았고 가세는 더욱 기울었다. 결국 가족들이 모두 강원도 동해시로 이사가는 바람에 혼자 자취생활을 하게 됐다. 그 무렵 선배들로부터 '공부 열심히 하면 서울대 상대에 공짜로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귀가 솔깃해졌다.

"머릿속엔 '늘상 대학에 갈 수 있을까', '빨리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엇갈렸지만 고2때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서울 상대에 합격하면 4년 학비전액을 보조하는 학교 장학제도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어요. 정구부에 가서 '공부하겠다'고 했다가 선배들에게 많이 얻어 맞았어요. 그렇게 대입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만약 서울상대에 못가면 철도대학에 진학할 생각도 했어요."

김 교수는 미친 듯 공부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대학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4~5시간만 자고 매진했다. 전과목 교과서를 거의 다 외웠다. 교과서 한 페이지를 다 외우면 찢어서 질근질근 씹었다. "씹으면서 다시 외웠다"고 했다. 그렇게 공부해도 지치지 않은 것은 운동으로 몸을 단련시켰기 때문이었다.

"시중에 나온 교재나 문제집은 죄다 풀었고 지금의 입시학원 성격인 '강습소'에서 수학과 영어과목도 수강했습니다. 경북중 시절, 수학을 가르치셨던 이을기 선생님을 찾아가 '수학공부를 어느 정도 해야 되느냐'고 여쭙기도 했죠. 선생님 앞에서 직접 수학문제를 풀었더니 문제집 한 권을 주시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셨지요. 하지만 혼자 공부하는 것이어서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공부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무작정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도리밖에 없었지요. 외톨이로 공부하다가 자칫 원서기간을 넘길 뻔했어요."

그는 놀랍게도 1961학년도 서울대 상대 본고사에서 수석으로 합격했다.


사회모순에 눈뜨며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대학시절, 경제학을 배우며 자본주의 문제점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똑똑한 친구들이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던 사회모순을 학문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당시엔 제대로 된 사회과학도서가 없어 일본책을 주로 읽었다.

대학 조교시절인 1968년 통일혁명당사건에 연루돼 보름 동안 남산에서 조사를 받았다. 대학 2년 선배인 신영복 선생에게 북한 소설책과 레닌의 '러시아자본주의발달사'를 빌려 읽고 포섭됐다는 죄목이었다. 결국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요주의 인사'로 지목돼 곤란을 겪었다.

이후 1969년 3월 외환은행에 입사했고 3년 뒤인 1972년 2월 런던지점 발령을 받았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때 깜짝 놀랐어요. 병원이 무료고 학교교육도 무료, 실업수당에다 장기공공임대주택까지 모두 갖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불황이 닥치자 파업으로 나라가 어수선했고 자본가와 노동자 간 싸움이 끊이질 않았어요. '공황이 뭔데 이러나' 싶었지요. 그런데 공황을 공부하려니 주류 경제학에는 공황이론이 없었어요. 그냥 시장논리에 맡기면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공황이론은 마르크스 이론에 있습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황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표를 쓰고 33살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는 화폐금융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박사학위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택했다. 당시 경직된 한국사회를 감안하면 일종의 모험이었다. 김 교수는 런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할 때까지 집에 전화기를 두지 않았다. 행여 자신의 집으로 전화를 건 지인들에게 피해가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서른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이십대 젊은 친구들과 경쟁을 하는데 기억력으로 따라갈 수 없잖아요. 남들보다 공부시간이 곱절 들었지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이 이론을 머리로 외울 때, 저는 사물의 전체를 이해해서 제 것으로 만들려 애를 썼어요. 비록 더디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론을 체화시키려 애썼던 것이지요."

그는 원없이 공부했다. 그리고 1982년 10월 마르크스 공황이론을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김 교수는 "지금의 자본주의 현실을 자꾸 개혁하면, 그게 축적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며 예의 마르크스 경제학자다운 얘기를 했다."요즘 학부모를 보면 자녀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려고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요.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자녀에게 맞는 적성을 찾도록 도와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린시절 운동을 많이 시켜 체력을 길러야 해요. 체력이 뒷받침 안 되고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자본론'을 번역할 때 꼬박 하루 14시간씩 앉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학창시절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선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입력 : 2008.10.13 04:05






김수행 교수 금융위기 특별강연…"서민살리는 국내시장 확보가 해결책" 


“외국의 빚으로 소비와 투자를 유지하던 미국의 ‘깡패자본주의’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마지막으로 가르쳤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금융 활동은 산업혁신을 통해 이윤을 얻는 산업활동이나 생산활동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재산재분배만 하는 사기·기생·투기 활동으로, 이것이 이번 미국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 한국경제에 대해 “수입과 수출을 많이 해야 하는 우리 경제는 다른 나라가 붕괴하면 꼼짝 못하는 구조여서 국내 시장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이를 위해서 “서민·노동자·농민을 살리고 스웨덴처럼 평등연대주의, 남북간 전쟁을 하지 않는 평화주의가 뿌리내려야 지금의 금융공황이나 산업공황을 피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90년대 IT자본 과잉-파산 주택시장서 반복

13일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마련한 '긴급진단, 미국의 금융공황과 한국경제' 특별강연에 나선 김 교수는 미국의 금융위기에 대해 '지나친 투기'와 반복되는 구제금융, 부실금융기관들이 미국 금융위기를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90년대 IT산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미국경제가 97년 아시아 금융공황 발생으로 아시아에 막대한 투자를 했던 미국 금융가들손해를 입자 FRB(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낮추고 싼 이자대규모 자본을 공급했으며, 이것이 다시 IT산업으로 들어가 닷컴 크레이즈(dot-com craze. 닷컴산업 열풍)를 불러일으켜 IT산업과잉생산파산으로 이어졌고, 이것을 다시 FRB가 공적자금으로 주택시장과 주택산업으로 자본을 이동시켜 주택가격이 상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주택수요와 주택건설이 늘어남에 따라 주택가격은 상승하고 세계 최대라는 미국은행들도 주택시장으로 몰렸다”며 “그래서 주택가격이 너무 오르니까 주택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도 ‘나도 사야겠다’는 투기심리가 생겼으며, 주택이 실제 이익을 실현시키는 투기상품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법, 금융엘리트들만 부유해져

또 김 교수는 “그런데 금융기법이라는 게 신용등급이 천차만별인 사람들을 3등급으로 나눠 주택저당증권을 만들게 해서 모기지회사-투자은행-신용평가기관-보험회사들이 주가를 정신없이 폭등시켜 결국 금융엘리트들만 부유해지는 방법으로 사기, 투기, 기생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며 “이것을 그들은 경제의 금융화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경제활동 중에서 생산활동이나 산업활동보다 금융활동이 더 많은 이윤을 남겼고 실제로 전세계가 그렇게 갔다”며 “크라이슬러, 포드나 지엠 같은 세계적 자동차 회사들이 생산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전부 주식과 채권을 사고, 돈을 꿔주고 그래서 전부 그렇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같은 경제현상에 대해 김 교수는 “산업은 죽고 금융만 자꾸 커진다는 사실은 실업이 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며 설명했다.

김 교수는 “주류 경제학에선 직장을 얻으면 봉급을 받고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부를 창조한다고 하지만 맑스경제학에선 실제 생산물을 만들고 서비스를 창출하고 뭔가를 실제로 하는 것이 부를 생산하고 가치를 생산하는 것으로 설명한다"고 말하고 "그러나 지금의 금융은 유통시장 같은, 돈을 지불해 생산에 넣는 것(투자)이 아니라 밤새도록 노름해서 한 사람이 잃으면 다른 한 사람이 따는 생산이 없는 창조가 없는 시장”이라고 금융을 통한 경제성장의 허구를 지적했다.

“개미투자자 다 잃게 마련“

금융시장에 대해 특히 김 교수는 “투자은행은 매년 엄청난 이익을 보는데 투신사의 전문가가 각 회사의 내부정보를 빼내서 주식회사의 투자를 통해 이익을 남기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 그래서 개미투자는 다 잃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교수는 “사실 2006년 초반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라’, ‘정부 개입 말라’, ‘부익부 빈익빈이 될수록 경제성장은 잘 된다’고 했는데 그것은 부자가 더 부자가 된다는 무당경제학(voodoo economics;미신경제학)”이라며 “이제 그들이 책임을 져야 될 때"라고 주장했다.

세계경제위기를 촉발시켜 놓은 미국의 7,000억달러 구제금융 대책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달러를 크게 발행하지 않고 국채팔아7,000억 달러조달하겠다고 하는데 문제는 각 금융기관들이 원하는 만큼 공급을 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그래서 각국이 자금 경색에 대해 공조하자고 G7회의 한다고 하는데, 나라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안되는 것”이라고 구제금융이 결코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김 교수는 “금융기관의 이윤은 노름해서 딴 수익”이라며 “FRB가 이자율을 대폭 낮춰 자금을 확 풀었는데, 그 돈은 결국 곡식과 석유, 금에 대한 투기 자금으로 사용됐고, 이에 따라 석유는 150달러까지 갔다”며 투기성 금융자본의 폐해를 지적했다.

"미 금융공항 2~3년 지속"

이어 김 교수는 “세계 경기는 그래서 산업생산, 제조업에 달려 있는데 고용이 얼마나 올라갈지, 노동자들의 임금을 얼마나 상승시킬 것인지가 중요한데, 미국이 국내 제조업을 살리지 않고서는 금융공황 당분간 2~3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80년 이후 20~30년 지났는데 사실 미국무역수지늘 적자외국 빚으로 살아왔다”며 “그래서 전쟁한다고 얼마나 돈을 많이 부었고 외국의 투자자들은 미국주식을 사기 때문에 미국에 돈이 유입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세계 최고 순채무국임을 강조한 김 교수는 “미국의 소비자들의 소비가 엄청나게 증가하기 때문에 미국경제가 그나마 유지되는 것이지만 개인들을 보면 전부 모기지와 카드빚 등으로 이뤄진 나라”라며 “자원도 많고 사람 능력도 많은 미국은 내수 시장이 확대돼야 서민도 사는데, 빈부격차가 계속 늘어나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 국내산업 육성과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김 교수는 영화 ‘식코’를 예로 들며 “미국은 국민소득이 4만달러이지만 국민 30%가 빈곤층이며, 돈 없으면 죽는 깡패 자본주의 국가”라며 “이명박 정부가 자꾸 미국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깡패자본주의는 내수를 늘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불어 김 교수는 “실업자늘어나면 실업수당늘려야 하고, 교육시켜야 하고 정부가 여러 사업을 만들어서 사업에 고용시켜야 국내 시장이 늘어나는데 금융공황 얘기하면서 이런 얘기는 하나도 안한다”며 “모기지 대출 받은 사람이 모기지론 갚지 못하면 은행은 망하게 돼 있어 내수시장 중심으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루즈벨트는 가난한 국민 위한 정책으로 라디오 인기”

미 금융엘리트들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오바마매케인선거공약사실똑같다”며 “전부 월스트리트의 금융엘리트들의 말을 들어 금융 살리자는 계획이지, 집 차압 당해서 집에서 쫒겨날 사람들, 실업당해서 제대로 못먹는 사람들 고려는 하나도 없고 자동차 산업 같은 데에 5,000억달러 구제금융 달라고 하는데 그거에 대해 하나도 얘기 안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형편없는 사회보장제도를 갖고 있어서 실제 1929년 대공황이 일어난 뒤 1933년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돼서 미국 자본주의를 완전 뜯어고치려고 했는데 재무장관 등이 시장에 맡겨두고 기다리자고 했지만, 루즈벨트는 도로만들고 농업지원금도 줬다. 주 1회 라디오 방송미국 국민 모두가 기울인 것은 이 때문"이라며 이명박의 루즈벨트 따라하기를 비난했다.

김 교수는 루즈벨트정책과는 정반대로 "부자가 잘 살게 만들어야 경제가 잘 된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누가 듣겠냐“며 이 대통령'무모한 욕심'을 조롱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리도 외환위기 이후 서민들은 모두 다 죽었고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럴 때 부자들이 돈을 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미FTA에 대해서도 “한미FTA는 단순히 관세문제가 아니라 미국을 따라가자는 것으로 왜 하필 깡패자본주의냐”며 “투자자국가소송의 경우 한국 정부가 서민, 농민 위해 정치하면 미국의 농업자본가들이 자신들이 손해 봤다고 한국정부를 국제중재재판소에 고소할 수 있도록 하는 건데, 그럼 한국정부가 다 물어줘야 한다"며 "우리경제가 자꾸 한미FTA에 따라 돛대도 삿대도 없이 이상하게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미국의 새 대통령은 지금의 한미FTA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데  한국이 먼저 한미FTA 비준을 처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환율은 변동, 달러 보유 자랑 말라“

달러 보유고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환율이 1,500원이나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며 “환율은 계속 뛰는데 외환보유고 2,300억 달러 있다고 자랑할 게 아니며 단기 외채가 1,900억 달러라고 고정되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김 교수는 “지금 미국이 이같은 곤경에도 자꾸 시장에 맡기자고 하는데, 금산분리 완화하자고 하는데 금융은 사기”라며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투기하고 주식해서 돈 빌려주고 이자받는 사람, 금리 생활자들안락사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동감”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곁가지라며 강연을 듣고 있는 강기갑 민노당 대표에게 “우리나라 사람들 노름을 너무 좋아한다”며 “정상적으로 노동하고 자기 앞날을 찾아야 하는데 노름금지법 만들라”고 말하며 한탕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말은 노동자 임금 깎겠다는 것”

김 교수는 수출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하는데 연구개발도 없고 결국 원가 싸움, 즉 제품가격 싸움인데 제일 많이 들어가는 게 임금이면 결국 임금 깎으라는 말비정규직양산하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미국은 결국 군사력을 이용해서 경제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려 할 것”이라며 “지금 미군주둔비를 놓고 50% 수준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100%까지 요구할 수도 있는 조공정책을 유지하려 할 수도 있으며 한미FTA도 그렇고 미국과의 관계가 자칫 반미로 갈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경제위기에 대책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4인가족 기준으로 약 8,000만 원이지만 실제 이만큼 버는 사람 거의 없다”며 “생산능력1명에게 2,000만원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서로 나눠먹는 복지국가 만들고, 옛날 박정희 때부터 날아온 깡패자본주의불식시켜서 곧 맞을 공항대처하자”고 제안했다.
 

2008년 10월 14일 (화) 05:00:57 변경혜 기자  che5185@redia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