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my222.net/zbxe/291488이 책의 제목이 모든 아버지를 대신하거나 부자간의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리라는 기대는 말았으면 한다.
매력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는 이 책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묶음이다. 남존여비에 상민들은 글을 몰랐던 시절이라 당연히 양반들의 기록이고, 아버지가 딸이 아닌 아들에게 보낸 편지들만 있다. 엮은이들의 학문적으로 번역한 성과물이 상업화된 것이라 판단된다. 참 유능하고 좋은 작가라고 생각했던 정민 선생님이 요새 다작하는 것도 썩 내키지는 않는다. 기가 빠져 나가는 느낌이랄까... 한 사람이 뜨면 그 사람을 쥐어 짜고 뽑아 내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성과물에 살짝 묻어 가는 출판 마케팅도 살짝 걱정스럽다. 물론 배울 점도 많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인간적인 기록들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퇴계의 편지는 아들의 편지가 드러나지 않아 아쉽지만 단면만 보더라도 너그럽지 않고 아들을 몰아부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황희 정승의 숨결이 묻어나는 반구정에 들러 시를 한 수 써 올린 아들 이 준은 아버지에게 경솔하다는 질책의 편지를 받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며느리가 보낸 단령(옷깃이 둥근 관복)에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퇴계가 공부를 대충 하거나 과거 시험에 응시하지 않는 아들에게 차갑게 던지는 서간문은 매섭기만 하다. 아들 준에게 보낸 퇴계의 편지를 읽노라면 처가살이에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는 장남에 대한 불만이나 집안의 제사 챙기느라 고생이 많다고 격려하면서도 그래도 공부는 계속 하라고 다그치는 모습 등 냉탕 온탕을 오가는 듯한  지극히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집안에 무당을 불러 들인 것을 다그치는 내용을 읽을 때에는 당시 사회의 풍습이 읽혀지고, 늘 과거 공부하던 아들이 지방관으로 근무할 때에는 공직자로서의 처신에 대해 조언 하기도 하는 등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 하겠다는 아들을 기뻐하지 않을 아버지가 어디있을까? 조선 중기의 문인 백광훈은 산사에 들어가 공부를 하겠노라는 두 아들의 결심에 기뻐하는 답장을 쓰면서 시시콜콜한 사연을 덧붙이고 있다. 장남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며느리의 해산이 무사했는지 근심이 묻어 있으며, 아들과 함께 지내는 아내의 건강을 묻기도 한다. 남의 말을 함부로 하는 아들들의 소식을 남을 통해 전해 듣고 대노하는 편지도 있으며, 논어를 제대로 읽고 외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언의 편지를 보낸다. 과거 시험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 그 자체가 중요함을 따뜻하게 조언 하면서 다음 공부할 곳으로 영암과 장흥, 해남 등의 지역을 거론하는 것으로 미루어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백광훈은 영암 출신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의 관계로 더욱 유명한 서애 유성룡은 본처에게 아들 넷 딸 둘, 측실에게서도 2남 1녀를 두었다. 벼슬길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면서 그 역시도 아들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많다. 특정한 한 아들보다는 아들들에게 한꺼번에 주고 받는 편지도 특징이다. 아들들이 지어 보낸 글을 평하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한다는 소식을 전해준 스님의 이야기에 기뻐하기도 하며, 전란으로 공부할 시기를 놓친 아들들에게 맹자를 읽도록 독려 하는 등 여러 가지 학습 방법을 전수해 주기도 한다. 난리통에 가족과 연락이 두절된 사연들을 보노라면 우리 역사의 큰 획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도 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에 갖혀 지내던 적화신 이식의 편지 또한 서글픈 민족사를 개인사에 녹여 놓았다. 김상헌과 정치적 동지이던 이식은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아들과 동생 걱정에 여념이 없다. 전란이 있기 전에 가족을 위한 피난처를 미리 마련해 두지 못한 가장으로서의 자신을 질책 하기도 하고, 백성들 살육 소식에 비통해 하는 내용들이 있다. 난리 통이라 책을 구할 수 없다는 자식을 나무라는 편지도 가슴 아픈 아버지의 단면이다. 그는 꾸준히 독서를 권하는 편지를 보내며 과거에도 응시할 것을 권하고 있다. 세자와 함께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기 전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도 그 시절 역사의 한 면을 자연스럽게 기록하고 있다.

박세당 또한 자식들에게 글쓰기에 대해 빠지지 않고 조언한다. 역사 책을 보는 방법에 대한 지혜로운 조언을 적어 보내기도 한다. 역사 책을 한 차례 훑어 본 다음에 마음 속에 그 핵심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으로 개인적으로 제법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 밖에 글이 주제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조언, 남자의 포부,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극복하는 방법 및 작문에 대한 따끔한 평가 등은 아버지이자 스승의 모습으로서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풋앵두를 따서 몇 되의 쌀로 바꿔 먹을 예정이라는 내용의 편지 속에는 지진에 관한 소식도 있다. 온 나라가 기근에 시달리고, 민심이 흉흉하던 시절에 대해 추측해 볼만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렇게 어렵된 시절에 박세당은 충청도 관찰사로 임명 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노자 도덕경에 주석을 내면서 지냈다고 하니 청백리가 따로 없는 듯 싶다.  장남 태유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여러 차례 문제가 있는 상관을 탄핵 하는 등 강직한 아버지를 닮아가는 걱정스런 면모를 보이기도 하며 결국 아버지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나중에 홀로 남은 아들 태한이 득남 소식을 전해 오자 몹시 기뻐하며 그 이름을 '다손'이라 작명하는 편지의 내용은 뭉클하기도 하다.

18세기 실학자 안정복도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 살아 생전에 매섭게 다그치고 나무라던 모습들이 편지에 구구절절 남아 있다. 아들 학아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누이가 무식해서는 안되므로 내범과 한글을 가르치라는 지시가 적혀 있어 실학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화가이자 문신이던 강세황의 편지에서도 아들들을 향한 잔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강세황의 편지를 보노라면 그 아들이 얼마나 주눅들어 지냈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문인이기에 앞서 표암은 화가로도 유명한데, 편지에서 태극로라 명한 구리 화로에 대한 설명이나 놋쇠로 만든 술단지 등이 흥미롭다. 일반 글쟁이들과 달리 뭔가 예술적인 표현이 묻어 난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편지에는 자신의 질병과 집안의 대소사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매우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박제가와 유득공 등이 자신의 부탁을 잘 들어 주지 않는다고 불편해 하는 솔직한 인물평도 기록되어 있고, 며느리의 순산 소식을 전해 듣고 아들 종의에게 보낸 답장에서는 손자에 대한 깊은 사랑도 심도 있게 다뤄진다. 손자에 대한 소식을 많이 전해주지 않는 아들 종의에게 다소 짜증 섞인 답장을 보내는 것, 장 담글 때 누이와 상의하라는 내용 등도 매우 인간적으로 읽혀진다.

초정 박제가는 정조가 죽은 뒤 모두가 숨죽여 지내던 시절에 신유사옥으로 함경도로 귀양을 갔다.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편지를 많이 보냈다. 이 책에 수록된 것도 모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들이다. 열악한 유배지 환경을 토로하며 빈공책을 보내달라거나 기타 생활용품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많고, 집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자꾸 흔들리지 소식을 보내지 말라는 매우 나약한 모습도 보여준다. 책을 읽을 때 꼼꼼히 메모하라는 조언 등도 보내며,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의 필체를 나무라는 글이나 유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집안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아들들에 섭섭한 내용도 있다.

19세기 금석학과 서예가로 활동했던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시절에 자신의 12촌으로부터 아들 상무를 입양한다. 그리고 측실 소생으로 아들 상우까지 모두 2남1녀를 두었다. 그렇게 입양된 아들 상무에게 보낸 편지가 주류를 이룬다. 양아들 상무는 제주도로 아버지를 찾아와 첫 상봉을 하기도 했으며, 어머니의 삼년상도 아버지 없이 치루는 등 고생많은 입양생활을 한다. 편지로 난을 치는 방법에 대해 묻는 상무에게 조언도 해주며, 측실 소생의 상우에게 보낸 꼼꼼한 공부법과 난 치는  방법 등에 아버지의 사랑이 녹아나 있다.


한문 편지의 번역과 원문 수록의 형태로 채워진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조언도 될 것이다.
내 자신도  박세당의 편지 등에서 마치 우리 아버지의 조언 혹은 호통을 듣는 듯한 마음이 들어 뭉클함과 옛 시절 반항하던 내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책을 매우 편안하게 읽었는데, 원문 대조하며 하나의 가벼운 옛글 읽기로 접근 하는 것도 괜찮을 성 싶다.





엮은이 : 박동욱, 정민
출판사 : 김영사 
출간일 : 2008년10월28일
쪽 수 : 315쪽
정 가 : 13,000원